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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와 천재의 하룻밤얘기

 

그날은 유난히도 피곤한 하루였다. 학생들 레포트 채점 하고, 기말고사 시험지 원안 제출 하고, 대한 수학회 에서 찾아온 분들과 새로 학회지에 올린 논문<임의의 N차 공간내의 리만특이점 산출에 관한 고찰>사전 검증을 위해  몇 시간을 그들과 마주 앉아 논문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오류를 배제한 논문의 타당성에 관해서 증명해야만 했다. 특히 대한 수학회 회장인 서울대의 김 창호 박사는 특유의 지적 오만감 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퍼즐 게임을 즐기는 지적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중고생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으며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난 학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어느 대학가처럼 정문을 나서자 화려한 색깔의  네온사인들이 학교주변의 거리를 채색하고 있었고, 만취된 일부 남녀 학생들이 비틀거리며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즘 애들이란 ,쯧쯧쯧.....’

오랜 시간은 아닌지만 그래도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지금처럼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1000원에 소주 한 병과 불에 살짝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사와서 친구 녀석과 비 내리는 날 레코드 가게 앞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늦은 시각까지 인생과 수학을 얘기하며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낭만은 있었다.

지금처럼 풍요속의 빈곤에 빠져 있는 애들과는 여러 차원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직장동료나 세인들은 내가 자가용 없이  학교에 출근 하는 걸 무척이나 이상하게 생각한다. 국립대의 부교수쯤 되는 사람이 어떻게 자가용도 없이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란 것이었다.

한마디로 교수체면 구기지 말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난 그런 그들의 따가운 눈초리나 불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편하면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수란 직책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차를 몰고 출퇴근을 꼭 해야 하는 당위성을 난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할 때 내가 자가용의 운전대를 손에 잡는 게 더 편하다는 인식이 들지 않는다면 영원히 지금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이런 나의 유행과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 때문인지 아직 난 또래  친구들처럼 반쪽을 만나 결혼이란 미명아래 가정을  꾸리며 아이들의 귀여운 재롱을  지켜보며 하루의 피로를 잊고,  밤이면 인간본연의 성욕을 해소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평범한 한 집안의 가장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또한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결혼해야만 되는  필연성이 날 공감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로 살아갈 것이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지금까지 난 외톨이 아닌 외톨이로 살아왔다. 오직 책만이 나의 친구이자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아마도 내 비명(碑銘)에는  이런 문구가  적히지 않을까 싶다.

  < 세상을 알기에는 부족한 반쪽자리 천재 이곳에 잠들다.>

크크크 그래도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아직 내가 존재 할 수 있는 이유란 게 아이러니한 사실로 다가온다.


갑자기 오늘은  혼자 사는 텅 빈 원룸에 들어가기가 무척이나 싫어졌다. 고독이라는 녀석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 난 한 달에 한번 씩 마법에 걸리는 여성들처럼 나 또한 나로서도 주기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 몸 동아리가 무언가를 항상 갈망 한다. 신이 만든 최대의 선물 술이었다.

 

난 항상 단골로 가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삼십년을 지켜오며 술과 구수함을 팔아온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가게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욕쟁이 주인 할머니가 심장경색으로 급사 하는 바람에  며칠간 내 몸속엔 단 한 방울의 알코올도 들어가지 않았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 그리운 건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때문인지 확실한 답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과 쉽게 잘 어울리질 못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나 보다. 


사실 그들과 만나서 나누는 얘기들 자체가  나에겐 무의미한 것들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뭔가 흥미가 당기는 얘기로 시작하다가 종국(終局)에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늪 속으로 빠져드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봐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난 생물학 분류상 포유류 과에 속한 종이지만 동물이면서 사회적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과 꼭 어울려서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고 들어주면서 맞장구 쳐주는 행동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별종중의 한사람이다. 사회적 동물이 아니어도 좋다.

난 그냥 사람이다.  동물이 아닌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반문하는 이들이 있으면 난 그들에게  사람은 동물이 아니라고 못 박아 얘기한다. 그럼 동물이 아닌 사람은 무엇인가?

빈 CD 와 안에 데이터가 들어 있는 CD의 차이점이 무엇이겠는가? 데이터가 들어있는 CD의 무게는 공 CD 보다 무거울까? 아니 무게는 같다. 프로그램은 무게가 없다. 하나의 전기신호일 뿐이다. 사람은 동물이란 몸속에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엮어진 파동-즉 氣일 뿐이다.

한마디로 에너지 덩어리라고나 할까? 사람을 동물로 구분하는 것은 단지 껍데기만 보고 외형적 신체구조만 따지고 분류해대는  고지식한 생태학자들 때문 일 것이다.

사실 난 껍데기에는 특별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더 이상의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본질의 문제에 접근하게 되고 그러면 해는 무수히 많아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신이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티격태격 하는 종교학자들이나 인간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이들과 창조론적 관점에서 보는 이들의 시비에는 별로 관심을 두고 싶지가 않다. 인간의 지적한계를 뛰어넘는 범위의 답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대 정문을 나서서 술집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왠지 색다른 곳에서 술을 한잔 하고 싶었다. 특이하게도 내가 부교수로 있는 이 학교는 여느 학교와는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부터가 좀 특이한 애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학교주변의 공간도 특이한 곳이 많다. 가끔씩 난 bar를 즐겨 찾는다. 그런데 bar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클래식 바, 째즈 바, 보드 바, 영화 감상바, 라이브 바,  락 바, 비키니 바, 호스트 바......

난 원래 항상 다니 던 길을 벗어나 처음 와보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특이한 상호를 한 고급 술집이 눈에 들어 왔다.

 

<거울 속 세상이 현실이 되는 곳>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허상과 실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난 강한 자기력에 끌리는 지남철마냥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곳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심플한 디자인과 스타트랙에 나오는 우주선 안에 들어온 것처럼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로비에서 조금 걸어서 라운지에 들어서자 은백색의 차가운 금속성 문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난 일하는 종업원이나 사람들이 없는가 하면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그냥 나갈까 생각하다가 문 옆에 있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치를 발견했다. 망막인식장치였다.

 

'무슨 연구소도 아니고....' 난 잠시 망설이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카메라 렌즈 앞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약간 뜨거운 붉은색 빛이 빠르게 내 망막을 스캔해 들어갔다. 잠시 후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면으로 내 눈에  보인 것은 큰 멀티TV였다.  잠시 후 화면이 켜지면서 악마를 상징하는 책에서 본듯한  문양의 그림이 스크린 상에 나타나면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을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준호 박사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궁금한 점이 많으시겠지만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우선 교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문 중 에서 한 군데를 고르셔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얘기해주세요"


난 잠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교수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세 개의 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대답해 주십시오."


"여기는 도대체 뭐하는 곳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시죠? 전 그냥 상호가 마음에 들어서 술이나 한잔 하러 들어온 것 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문은 무엇이고, 제가 왜 그걸 선택해야만 하죠?"


"박사님,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알게 되십니다. 우선 제가 말 한대로 하나의 문을 선택하고 10초 동안 눈을 감아 주십시오."


난 갈등에 휩싸인 채  고민에 빠졌 들었다. 무슨 이벤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의 호기심은 이내  그냥 시키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난 미래의 방을 선택하겠소."

 

"네, 그럼 잠시 눈을 감아 주십시오. 잠시 머리에 약간의 통증이 오는 걸  느끼지만 절대 눈을 떠서는 안 됩니다."

난 스크린에서 나오는 말대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강한 전기충격을 받는 듯한 쇼크가 머리에 전해져 왔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어깨를 두드리는 상냥한 목소리에 난 눈을 떴다.

 

훤칠한 키의 조각 같은 얼굴을 한  20대 후반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내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박사님, 미래의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잠시 후 듣고 우선 절 따라 오시죠."

매니저는 넓은 라운지와 복도를 걸어서  여느 바의 분위기와  차이가 없어 보이는 곳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매니저는 바 카운터에 나를 앉히고 안쪽 주머니에서 아이패드를 꺼내서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박사님, 아이패드를 터치하시면 패스워드를 입력하라는 화면이 뜹니다. 박사님의 주민번호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창이 열리면서 몇 가지 박사님의 기호를 묻는  메시지가 뜰 겁니다. 박사님께서 함께 술을 드시고 싶어 하시는 이상형의  여성의 데이터를 생성시키는 메시지창입니다. 지금 바로 입력해서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난 매니저와 함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는  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냥 돌아서 나갈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맞은편의 장소에 도착해서 건너온 강이었다.

 

돌아갈 배도 없어 보였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이었다. 난 내가 평소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의 모습을 그리면서 차례로 화면을 터치해나갔다. 이브를 만드는 조물주의 마음처럼 조금은 떨리는 맘으로 조심스럽게 데이터를 입력시켜 나갔다. 얼굴, 키, 옷맵시, 지적수준, 성격, 목소리 등  창에 떠있는 메시지에 생각을 정리해서 내용을 입력시키고 난 후 매니저에게 아이패드를 돌려주었다.

 

매니저는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내가 앉아 있는 바 카운터 의자에서 11시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파란색 문을 열고 사라져갔다.


잠시 난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오늘 같은 주말저녁이면 여느 바(BAR)라면 바에는 손님들로 차서 카운터걸과 얘기를 나누며 시끌벅적 거려야 하는데 비교적 넓은 바(bar) 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스크린에 떠올랐던 사탄의 문양과 함께 나에게 들려왔던  목소리가 뇌리를 맴돌기 시작하였다.

 

“ 이 준호 박사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분석해 보면 나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난 도무지 이 고급 술집의 정체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오늘은  원래 다니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 외진 곳으로 발길을 옮겨서 낯선 장소로 왔지만 이런 상호의 건물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항상 모든 사물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인지지금의 상태가 납득이 가지 않아서 인지 안 그래도 오늘 하루 피곤했던 피로가 언습해 오며   머리가 띵하고 아파왔다. 그때 웨이터가 사라졌던 문이 다시 열리면서 한 여인이 문을 열고 모습을 나타내었다. 난 순간 너무나 놀라서  앉아있던 의자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질 뻔 했다. 내가 항상 꿈꾸어 왔던 아이패드 속에 입력시킨 내 머릿속의 이상형의 여인의 이미지가  실체로 내 눈앞에 나타나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운터를 돌아서 내 앞에 선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이 준호 박사님, 안녕하세요. 전 사라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교수님, 지금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차츰 저와 계시면서 지금의 뜻하지 않은 상황들이 해석이 되면서 점차 나아지실 거예요."

 

난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정말 항상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여인의 이미지와 똑같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사라. "

 

"네, 교수님!  뭡니까?"

 

"당신은 누구죠? 당신이 나타나기 전  미남형의 매니저가 나에게 원하는 이상형의 여자의 모습을 물었었는데 지금 앞에 서 있는 사라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군요. 그 짧은 시간에 이미지를 합성해서 3차원 홀로그래피로 만들어진 영상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10분정도 되는 시각에 당신이 만들어 졌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텐데... 정말 머리가 복잡군요."

 

사라는 잠시 나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은 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떤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씀 하실 수 있으세요? 그리고 실제로 원자나 쿼크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리고 시간은 왜 항상 미래로만 흘러가는 걸까요? 과거로 흐르는 시간은 왜 존재 하지 않을 까요? 박사님 제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라는 나에게 본질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느냐?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글쎄요, 이유가 뭘까요?"

 

난 정확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서 사라에게 되물었다.

 

"저희가 알고 있는 모든 실상은 인간의 끊임없는 진화에 의한 발달한 이성과 그 산물인 학문이 체계화 되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실재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사실인가죠?  저는 박사님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여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영원히 이 모습으로  계속 존재할 겁니다. "

 

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물었다. 깊게 빨아 넘긴 담배연기는 기관지를 통해 폐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나의 폐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채 내 뿜는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래요, 교수님 그래도 술집에 오셨으니까 술은 한잔 하셔야죠? 어떤 술을 좋아하세요?"

 

난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꺼 고는 사라에게  말했다.


“술을 마시러 왔다가 철학적 얘기를 나누게 될 줄은 .... 하하하. 그런데,  여긴 왜  손님이 저 밖에 없는 거죠? 사라!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도무지 궁금해서 지금 저의 모든 신체 기능이 정지할  것 같군요. "

 

"이 박사님, 지금은 모든 게 궁금하고 낯설겠지만 차차 진실을 깨닫게 되실 거예요. 술이나 한잔 드세요"


오늘은 독하면서도 혀끝에서 맴도는 여운이 달달한 술이 떠오른다.

 

"근데 사라! 메뉴판 좀 볼 수 있을 까요? "

"

아, 제가 깜박 했군요. "

 

사라는 양주병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안 구석에서 투명한 글라스 안에 들어있는 에머랄드 빛의 구슬을 한개 끄집어내어  엄지손가락으로 구슬을 문지르기 시작하자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홀로그램속의 영상들을 몇 번의 손놀림으로  터치하자  많은 종류의 칵테일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교수님, 다 되었습니다. 여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칵테일이 보이시죠. 이중에 마시고 싶은 걸 터치 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칵테일 밑에 있는 숫자는 박사님이 보고 싶은 미래의  시간들입니다."

 

칵테일에는 2011부터 일정한 패턴으로 숫자가 증가하면서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숫자들은 소수 같은데."

 

"네, 교수님 맞아요. 박사님은 소수로 되어 있는 미래의 시간들은 언제든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박사님 세상의 끝을 보시고 싶으시면 가장 큰 숫자가 적힌 칵테일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 신이 아닌 이상 세상이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리고 아직 소수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이론이 증명되지 않아서... 리만가설이라고는 있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교수님이 제일 궁금한 미래의 시간을 터치해 보세요."

난 현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그러면서도 엄청난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을 미래를 보고 싶었다.

 

"2213년으로 하죠. 사라. 그런데 정말 미래로 가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가요? "

 

"네, 교수님!  제가 칵테일을 만들어 오는 동안 2213년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세요."

 

사라는 바 카운터를  돌아 나와서 나왔던 문으로 사라졌다.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다.'

 

난 이성이 어떻게 되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에머랄드빛 구슬에서 나오는 3차원 홀로그램영상이나  내가 그리고 있던 이상형의 이미지와 똑같이 생긴 사라의 모습. 

 

'2213년의 미래를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일을 내가 경험하다니...'


잠시 후 칵테일 잔을 들고 사라가 나타났다. 사라는 날 쳐다보면서 푸른빛이 도는 액체가 담긴 칵테일 잔을 내 밀었다. 마치 내 맘을 읽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사라의 눈빛을 한참동안 쳐다보던 난 사라가 가져온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켜 마셨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라의 모습이 점점 희미하게 눈앞에서 아롱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이 눈을 떴을 때는 마실 때 생겼던 두통과 메스꺼움이 가시고 기분이 상쾌해져 있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라를 찾았다.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는 20m남짓 떨어진 3시 방향에서 뒷짐을 진채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사라 옆에 섰을 때 내 앞에 펼쳐져 보이는 놀라운 모습들.  그건 몇 만 km상공에서 쳐다보는 지구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녀가 서있는 앞의 벽이 금속성의 불투명한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처럼 외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마도 난 지금 우주선과 같은 선체내부에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이들에 의해 조작된 밀실내부에서 만들어내는 허상을 보고 있는 건지, 꿈속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이 어때요, 박사님? 너무 뭔가요. 조금 가까이 접근 해보죠."

 

그녀는 우주가 보이는 정면의 유리에 손을 가까이 대자 복잡한 계기판과 같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사라는 계기판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하자 지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라!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모습이 실제 지구의 모습이 맞습니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안은 우주선이 맞나요? 어떻게 제가 여기에 와 있는 거죠?”

 

사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은 교수님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미래의 지구 모습을 구경하시죠. 상세한 얘기는 곧 알게 되실 거예요.”

 

난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지구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지금의 지구처럼 그렇게 대기층이 맑아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대기 전체가 스모그가 낀 도시처럼 뿌옇게 보였다.

 

"사라, 지구로 내려갈 수도 있나요?"

 

"네, 가능해요. 하지만 우주선 밖으로 나갈 수 는 없어요. 그럼 2213년 지구의 모습을 구경해 보실까요."

 

우리가 타고 있는 우주선은 빠른 속력으로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이는 2213년의 지구의 모습들.
형언 할 수 없을 만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유지하며 그렇게 2013년의 지구가 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사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어떻게 2213년의 미래로 올수가 있는 거죠?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와 있는 거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타고 있는 우주선이  타임머신이라도 된다는 거요? 사라 !지금 난 너무나 혼란스럽소. 이제 나에게 상세히 얘기해 주시오.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요? “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사라를 향해 외쳤다.


사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대답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우리가 처음 있던 곳으로 먼저 되돌아가죠. 돌아가서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곤란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꺼내 주었다. 내가 즐겨 피는 D.H 라이트 담배였다.

 

"이걸 한 개비 피우시면 잠시 후 원래 있던 곳으로 갈수 있어요. 피우세요!"


사라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서 입에 물자  자동으로 불이 붙으면서 담배연기가 빠르게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칵테일을 마셨을 때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서 난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난  바의 의자위에 앉아서 엎드린 채 있었다.

 

“정신이 드세요? 여기 시원한 물 한잔 드세요.”

 

난 사라가 건네주는 빙수를  한잔 마시자 머리가 좀 맑아 오는 것 같았다.


“교수님, 우주선 안에서 질문했던  얘기들을 해드리도록 하죠. 우선 저에 대해서 말씀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사라는 옆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전 세상의 끝에서 온 사람입니다. 박사님이 보시기에 여자로 보이지만 실은 전 남자입니다. 박사님과 유전자 구조가 똑같은 .”

 

난 잠시 멍하니 사라를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찬찬이 설명해 드리죠. 우선 교수님은 수학을 전공하셨지만 물리학분야에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박사님, 반물질이란 말 들어 보셨나요?”


“네, 반물질(反物質)은 반입자의 개념을 물질로 확대시킨 것으로 알고 있소. 물질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듯이 반물질은 반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런 얘기겠죠.”

 

“반물질(反物質)을 만드는 반입자는 무언가요?”

 

“일반적인 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인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대립되는 입자를 말하는 거 아닌가요.  반입자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너무나 짧은 시간에 상호작용하여 감마선이나 중성미자로 변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렵죠.  실제로 확인된  반입자는  반중성자, 반양성자, 반중양성자 등이 밝혀져 있는 걸로 알고 있소. 마지막으로  반물질과 물질이 서로 접촉하면 쌍소멸이 일어나며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정도까지  알고 있소.“

 

사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그게 지금의 과학수준에서 밝혀낸 사실이죠. 저는 그 반물질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왔어요. 반물질계가 존재하는 세상은 박사님이 살고 계신 세상과는 모든 게 좌우대칭적인 반대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우주 또한 인간들이 모르는 반우주계가 존재하고 있어요. 지구가 처음 만들어 졌을 때 반우주계속의 지구는 소멸되어요. 둘은 같이 상생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면 반물질계의 세계에서는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요. 이 대립되는 두 개의 세계는 실제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거울의 안과 밖처럼 실제로 두 세계는  만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앞에서 교수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반입자는  입자와 만나는 순간 소멸되고 말죠.

 

그런데 우주에는 이 두 세계가 공간속에서 꼬여져서 만나는 교차점이 존재하고 있어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물질계의 세상에서 물질계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의 문이에요. 저는 그 교차되는 특이점을 통해서 이곳으로 올 수 있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물질계의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그 특이점을 지나서 반물질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죠.”


“사라!  궁금한 게 있소. 어떻게 당신은 물질계의 세계로 전이해왔는데 멀쩡할 수가 있는 거요. 거대한 에너지로 이미 사라졌어야 하쟎소?”


“하하하, 그건 지금의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런 거죠. 원자속의 핵 이란 게 일정 번호를 넘어서면 자연 붕괴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원자번호가 83을 넘어서면 강한 핵력이 제어하지 못하면서 양성자끼리의 반발에 의해서 붕괴가 일어나죠. 그런데 반물질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복잡한 구조의 반입자일수록 더욱더 안정되어 집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시지 않을 거예요. 지금의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게 겨우 반 수소 정도이니.”


“그 말은 특정 수치에 도달한  입자는 서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네,  반 물질계와 물질계는 일정범위의 경계치 값을 넘어서면 서로 쌍생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요. 지금 박사님이랑 저는 같이 있지만 상생하죠. 그리고 그 특이점은 우주와 반

 

우주의 시간이 같아지는 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라! 조금 쉽게 설명해 주겠소?”

 

사라는 웃으면서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이 우주는 항상 두 개의 대칭되는 논리가 존재해요. 박사님이 살고 계신 곳에서의 神 이란 존재가 제가 온 세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해요. 하지만 이세계의 神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여하튼 전 반 지구계의 지구 종말시점에서 저 혼자 살아남아 이곳으로 오게 된 겁니다. 저의 아버님은 제가 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셨죠. 지구로 계산하자면 A.D2500000000년무렵에 지구의 내부에너지가 다 소멸되면서 지구는 자전을 멈추게 되고 태양의 인력에 끌려서 파괴되고 말아요. 아버진 우주의 어떤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드셨고, 그곳에 제가 타고 왔어요. 그리고, 전 지금 시간 여행중 입니다. 저의 최종 목적지는 지구에 처음 생명이 탄생하던 37억년전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곳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샤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불빛에 비친 샤라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저 모습이  남자라고..ㅋㅋㅋ’

 

“사라, 근데 아까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유전자구조가 저와 똑같다고 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하하, 교수님, 저는 반물질계의 세계에서 왔다는 걸 잊으셨나요. 저를 거울 속에 있는 박사님으로 보시면 되요. 그리고, 모든 지구상의 인간들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반물질계의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이 죽으면 똑같은 유전자가 복제되어 반 물질계에서 태어나는 거죠. 상하좌우가 바뀐 유전자 고리를 가진 채...... 그리고 박사님의 미래가 저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이유는 아시겠죠.”

 

“사라, 근데 2213년의 세계로 간 것은 어떻게 한 거요?”


“박사님께서 드신 푸른빛이 도는 액체와 피웠던 담배는 박사님의 분자구조를 저와 같이 바꾸어 주는 촉매예요. 즉, 박사님의 육체는 이곳에 있었고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서 저와 같이 시간여행을 갈수 있었던 거예요.”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두 가지 있소? ”

 

사라는 얘기해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첫째 제가 알기로는 빛의 속도로 접근해서 움직이면 시간지연효과로 미래로 갈수는 있어도 과거로는 갈수 없다고 알고 있소? 근데 어떻게 당신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거요?”


“박사님, 그 논리는 20세기초 아인시타인이 제시한 얘기군요. 실제로 미래로밖에는 갈수가 없어요.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된다고 하더라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제가 있는 반우주 공간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여기와는 반대입니다.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가요. 근데 차원의 벽을 넘어서 물질계의 세계로 오게 되면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이 단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저는 지금도 과거로 여행을 하고 있어요. 박사님이 보셨던 2213년은 저에겐 과거예요. 이해가 되시나요?”


난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고는 불을 지폈다.

 

“그건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고, 마지막으로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길 들었는데, 왜 나를 기다렸던 거요? 그리고 당신 혼자서 왔다면서 남자매니저는 어떻게 된 거요?

 

“네, 교수님 , 우선 매니저는 제가 만든 인조로봇입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꼭 알아 두셔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어요. 박사님? 45억년 동안 인간이 어떻게 고도록 진화되어 올 수 있었을까요? 진화의 체계는 어떤 부분에서 모순 이란 걸아시죠? 자연발생학적인 환경의 조건에서 생물은 더 복잡한 체계로 진화되기가 힘들어요.
근데 어떻게 지금의 인류가 존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나는 대답을 못하고 머릿속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생각 중 이었다.

 

“제가 아까 생명이 처음 지구상에 나타나던 곳으로 여행 중 이라고 말씀드렸죠. 이유가 있습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나서 복잡한 진화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의 프로그램 때문이에요.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서 진화되도록 만들어 진거예요. 그 누군가는 박사님이나 제가 존재하는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고도의 지적문명을 가진 미지의 생명체(神)가 만들어서 지구의 깊숙한 곳에 밀봉해놓은 진화 프로그램 때문이에요.

 

이 우주는 하나의 우주만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건 들어보셨죠. 저희 아버님은 그 비밀을 풀어내신 분이세요. 저는 제가 직접 과거로 가서 그 프로그램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진화프로그램을 집어넣어야 해요.

근데 중요한 것은 그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저와 같지만 반대되는 물질계의 유전자구조를 가진 자의 혈청이 필요해요. 그 분이 바로 교수님이시죠.

혈청을 분석해서 데이터-이미지화 시켜서 저의 이미지와 합성을 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막대한 에너지가 생성되면서 제가 가지고 가는 새로운 진화체계의 프로그램이 든 초고도의 지능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있어요. 그래야,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 저는 돌아가서 아버지와 오빠,어머니를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난 순간 사라의 눈가에 고이는 눈물방울을 보았다.

 

“그럼, 지구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요? 지금의 나도 없겠군요?”

 

“아뇨, 진화는 그대로 유지 되도록 만듭니다. 다만 진화시간을 조금 앞으로 앞당긴다는 얘기예요. 그래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이해되시죠. ”

난 고개를 끄덕 거렸다.


“교수님, 이제 교수님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혈청을 얻어가는 대신에 소원을 한 가지 들어 드리도록 하겠어요. 이것도 예정되어 있던 거예요. 말씀해보세요.”


“세상의 끝을 보고 싶군요. 그리고 나에게 세상이 끝나는 시점의 시간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었는지 대답해줘요.”

 

“그 말은 소수의 규칙성을 알고 싶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알겠습니다. 박사님, 리만이란 수학자 아시죠?”

 

“네, 그게 이일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 리만이란 인물은 저의 아버님 밑에서 보조원으로 연구하던 사람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분이에요. 박사님과 저처럼..... 그런데 그 연구원이 리만의 꿈속으로 들어가 소수의 규칙성을 풀수 있는 해답을 가르쳐 주었죠. ”

 

“그게 가능한 일이요?”

 

“박사님이 최근에 발표한 논문을 보았어요. 거기서 N차원공간에 대해서 고찰해 놓으셨는데 1024개의 꼭지점을 가지는 10차원의 입방체의 면들을 뫼비우스 면으로 합성시켜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몇 개의 면이 만들어질까요? 10차원까지 갈 필요도 없군요. 5차원에서 뫼비우스면을 합성시키면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만들어 져요. 근데 중요한 것은 실체가 아닌 이미지만 출입할 수 있어요.


그 문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데이터화해서 특정시간대의 공간에 보내면 그게 그 사람의 꿈속에 나타나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물질계의 인간 에게만 가능한 일이죠. 리만은 답을 제시해서 새로운 차원의 알고리즘을 풀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요절해 버렸죠. 꿈속에서 에너지를 받으면서 너무 인체의 면역체계가 약화되어 버린 거죠. 그 연구원은 아버지에 의해서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으로 보내졌어요. 박사님, 소수의 규칙을 찾는 해답은 제가 메일로 보내드리겠어요. 시간이 없군요. 전 과거로 여행을 계속해야만 해요. 교수님. 여기 알약이 하나 있는데 드세요. 곧 편안해 질 거예요.”


난 사라가 건네주는 알약을 받아서 먹었다. 곧 졸음이 쏟아지며 깊은 잠속으로 난 빠져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난 나의 원룸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치 생생한 꿈을 꾸고 난 사람처럼...

 

난 컴퓨터를 켜고는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그 중에서 사라이름으로 보내진 메일이 하나 와있었다.

난 편안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부대 정문에서 내려서 어제 갔던 그 가게를 찾을 려고 기억을 더듬어 주변을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들어갔던 고급 술집이 있던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술집이 들어서 있던 곳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난 가까이 다가갔을 때 눈에 들어오는 상호를 볼 수 있었다.

 

<거울 밖 세상이 현실이 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