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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천재수술(8)

지성은 그날 저녁 모처럼 혜성과 함께 집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차가 혜성이 사는 아파트 동 부근에 가까이 왔을 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경찰차가 보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성은 모여 있는 주민들을 뒤로하고 아파트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집어넣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지성은 혜성과 내렸다. 왼쪽 귀퉁이를 돌아 지하 엘리베이터가 있는 203동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입구 쪽에서부터 경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혜성과 지성은 엘리베이터에 승차한 후 12층을 눌렀다. 잠시 후 12층에 승강기가 도착하자 집 앞 1214호 쪽에는 경관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고, 수사라인이 입구 쪽에 쳐져 있었다. 그때 서야 혜성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지성은 표정이 굳어진 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지성 교수님, 저는 서울 경찰청 강력1팀장인 이동철 경위입니다. 우선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부인되시는 김혜정 씨가 오늘 집에서 범인이 휘두른 칼에 몸의 몇 군데 부위가 심하게 찔려서 과다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이 경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에서 자지러지는 혜성의 곡성이 서럽게 들려왔다.

 

제 아들 녀석인데 충격이 큰 것 같습니다. 엄마를 그렇게 잘 따르던 아이 였는데...”

 

지성은 이 경위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혜성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혜정을 보고 미쳐 날뛰기 시작하였다.

 

엄마, 난 누굴 보고 살라고 이렇게 가. 엄마, 죽지 마. 도대체 왜 어떤 녀석이 엄마를 이렇게 한 거야? 난 엄마 없으면 못살아. 엄마.... 으으응...”

 

경관 세 명이 달려들어 혜성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된 혜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혜성을 지켜보는 지성의 가슴도 찢어지게 아팠다.

그날 늦은 시각까지 경찰의 수사는 계속되었다. 경찰의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범인의 윤곽과 정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범인은 혜정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였다. 범행동기는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으로 경찰은 결론 내렸다. 경찰의 수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지성의 부인 김혜정은 남편 이지성 교수와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하였고 결국엔 잠자리를 따로 하기에 이르고 남편과의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끊기자 혜정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결국 교회의 담임목사와 정을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번의 정을 통한 혜정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목사를 점점 멀리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목사가 혜정의 집으로 찾아와 협박 조로 만나줄 것을 강요하였고 오늘 만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교회에 숨어 있던 목사는 경찰에 의해 잡혔다. 목사는 범행 과정을 순순히 자백하였다. 범행 검거까지 초 스피드로 진행된 수사는 하루 만에 범인이 검거되면서 경찰 수사는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선 혜성이 문제였다. 어머니 혜정의 죽음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세인들의 시선이 혜정의 외도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혜성은 이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물론 지성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혜정의 외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짊어져야 할 상황이었다. 발인이 있던 날 많은 사람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중에는 이유림과 김송이도 끼어 있었다. 유림을 보는 순간 혜성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시간 여행자라면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말 한마디 없었지? 그러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유림은 혜성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전 집착하지 않아요. 기다릴 뿐에요. 당신 속의 분노. 참아야 해요. 이제 그날이 멀지 않았어요. ”

 

그날이라면? 아버지?”

 

아뇨. 당신과 아버지...”

 

당신이 여기에 있을 이유도 점점 없어져 가는군. 여하튼 장례식 끝나고 딴 곳으로 가지 말고 오도록 해요. 그때 봐요.”

 

혜성의 말이 끝나자 유림은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송이도 유림을 따라 사라졌다.

 

 

그날 저녁 장례식을 끝내고 지성은 연이은 밤샘으로 몸이 극도로 피곤해 보였다. 반면 혜성은 젊어서인지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거실에는 초대받은 두 명의 여자가 같이 앉아있었다. 유림과 송이였다.

 

이지성 교수님은 매우 피곤해 보이시는데 내일 만나도 관계없어요.”

 

아닙니다. 오늘이 아니면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저도 혜성과 마찬가지로 유림에게 서운한 게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지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 때문과도 관계있는 게 아닙니까?”

 

, 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은 제가 속해있는 미래나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는 여행이 불가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하늘에서 떨어진 빛나는 미지의 빛을 온몸에 맞고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만약 이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얘기를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인되시는 분은 죽지 않고 살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죽은 뒤의 미래가 바뀌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제가 만약 혜성 씨를 죽이게 된다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살아있지만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거죠. 그래서 가급적 과거의 시간을 바꿔서 미래를 변화시키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히틀러의 경우가 그 확실한 증명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1930년 대로 가서 히틀러를 살해하면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럼 수백만의 인류를 구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 뒤틀려버린 시간은 그 시점을 중심으로 또 다른 평행지구가 생기게 되고 말죠. 즉 제가 바꿔놓은 미래의 시간은 바뀐 시점을 중심으로 두 개의 평행미래가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그 말은 어머니가 살아있는 세계와 어머니가 죽은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게 된다는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물론 미래에서 온 자는 부인이 죽은 미래에서 왔지만 부인이 살 수 있게 되면 그 미래로 가지 못하고 다른 미래로 가는 것이죠. 그럼 영영 자신이 왔던 미래의 시점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되죠.”

 

듣고 있던 혜성이 물었다.

 

그럼 당신이 온 미래는 나의 아버지가 저에 의해서 죽은 미래에서 온 것인가요? 그렇지 않은 미래에서 온 것인가요? 당신이 이곳으로 왔다는 말은 이미 아버지가 죽은 미래에서 왔다는 걸 암시하는 말이 아닌가요?”

 

맞아요. 저는 당신에 의해서 이지성 교수님이 총에 맞아 죽게 되는 미래에서 넘어왔어요. ”

 

그럼 어떻게 하더라도 아버지를 살릴 수가 없게 되지 않나요? 아버지를 살리게 되면 그 순간 미래가 변한 지구에 사는 게 되니까 당신이 살던 미래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되잖아요? 그럼 여기에 온 이유가 없어지게 되고... 더불어 여기에 온 목적도 희박해질 것 같은데...”

 

논리적으로 보면 그래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변해버린 미래로 돌아가면 문제는 생기지 않는 거죠?”

 

그럼 원래의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그건 저도 알 수 없어요. 그 미래로 갈 수 없게 된 이상 그쪽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럼 당신이 봤다는 제가 총으로 아버지를 저격하는 그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그건 그 상황에 맞닥뜨릴 당신의 마음에 달렸어요? 그리고 혜성 당신은 여기 있는 김송이와 정해진 날에 자신도 모르게 잠을 잘 거예요. 그래야 난 미래로 돌아가서 제가 과거로 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여기게 온 목적이 제가 아버지를 저격하는 걸 막는 거라면서...”

 

, 그건 명목상의 이유일 뿐이죠. 실제의 이유는 따로 있어요. ”

듣고 있던 지성이 조용히 물었다.

 

그게 뭔가요? ”

 

인류는 40년 안에 인류의 과반수가 죽게 되는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에 노출되게 되어있어요. 인류는 그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가 합심하여 노력하지만 결국 막아내지를 못해요. 그때 그 무서운 γ 바이러스에 동북아지역에서 홀로 살아남는 소녀가 나타나요. 그 아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γ 바이러스에 노출되어도 자가 면역에 의해 스스로 치유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소녀였죠. 그 소녀의 이름은 유리아로 전 그 아이의 혈청이 필요한 겁니다. 유리아는 바로 이지성 교수와 네이쳐 지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김유리 기자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에요.”

 

순간 실내는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봐요, 이유림. 지금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바보로 보여요?”

 

혜성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내가 아버지를 죽이는 미래에서 왔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김유리 기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느냐 말야.”

 

제가 준 알약을 몇 알 먹어야 이해를 할 것 같군요. 제가 언제 결혼한다는 얘길 했나요? 그리고 분명히 아버지가 당신에 의해 살해되는 미래에서 넘어왔다고 얘기했어요. 아이는 꼭 결혼을 해야 낳나요?”

 

순간 혜성은 뭔가를 깨달은 듯 한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 내가 아버지를 살해할 동기가 너무 약해. 그런데 그날이 언제죠? ”

 

유림은 굳은 얼굴로 대답을 하였다.

 

정확히 어머니 제삿날 당신은 사제 총으로 오후 6시경 집에서 아버지를 살해해요. ”

 

내가 만약 그 시간에 아버지를 안 만나면 아버지가 죽을 일도 없겠군.”

 

그렇게 되면 저는 변한 미래로 인해 제가 살던 미래의 그 지구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인류는 γ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모두 멸종하게 되는 거죠. ”

 

지성이 차분히 물었다.

 

유리아의 혈청은 왜 얻을 수가 없는 거죠? ”

 

감염병이 극성을 부리며 인류가 죽어 나갈 때 비행기사고로 죽어버려요. ”

 

그때가 몇 살 때인가요?”

 

“16살 될 때였습니다.”

 

그럼 유리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혈액을 채취하면 안 됩니까?”

 

교수님도 알약을 하나 드셔야겠군요. 그 아이는 제가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에 수정이 가능하게 된 거에요. 이해가 되시죠?”

 

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난 어떻게 하지?”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던 김송이가 물었다.

 

사고가 터지려면 아직 1년은 남았으니 혜성과 잘 사귀셔야죠. 언제든지 달이 그리우면 이야기를 해요. 오늘도 당장 날 잡는 것은 문제 될 건 없어요. 회장님이 승낙을 하신 상태라 날짜만 잡으면 됩니다. 생각하면 좀 우울한 얘기뿐이지만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저도 반인륜적인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고 있네요. , 그럼 다른 질문사항은 없으시죠. 그럼 얘기는 여기서 끝내도 될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지성이 물었다.

 

미래의 당신 직업과 소속은 어떻게 됩니까?”

 

전 의사입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은 재단의 유일한 총수이기도 해요.”

 

당신이 천재 수술을 대체할 수 있는 알약을 만든 장본인입니까?”

 

, 혜성 아니 아버지가 남겨놓은 노트를 보고 성별, 나이별로 가장 효과적인 알약을 제조하게 되었죠.”

 

혹 내가 언제 죽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은 γ-바이러스 질병에 감염되어 쓸쓸히 감옥에서 죽게 되죠. 제가 사는 미래에서는 그랬어요. 혹시 미래가 바뀐다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네 사람의 대화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이 나고 유림과 송이가 집을 나설 때는 새벽 2시를 넘어서는 시각이었다. 지성은 지칠 대로 지쳐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천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나마 혜성은 아직 기력이 남아 있는 듯 창밖 건너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 표범처럼 거실 창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주무세요?”

 

아니... 좀 피곤할 뿐이다. ”

 

유림이 한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히 제가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섬찟한 이야기말에요? 유림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아버지를 죽여도 문제가 생기고 안 죽여도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만...”

 

지성은 혜성의 말을 듣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혜성아!”

 

, 아버지...”

 

이미 너는 답을 알고 있다. 내 생각을 묻지 말고 네 생각을 얘기해보렴.”

 

저는 제가 정말 아버지를 죽일까 봐 두려워요. 지금도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좋지는 않아요. 연구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어머니는 전형적인 여자였어요.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무슨 이유로 인해서 집으로 들어오시는 날이 점점 줄어갔고, 어머니는 그럴수록 저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부으셨죠. 아버지에게 여자이고픈 마음도 돌아서 외면해버린 남자로 인해 속앓이만 하신 거죠. 저는 나이가 들어가며 어머니의 웃는 얼굴 속에 숨겨진 그늘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사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전두엽 제거 수술을 받고 나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진 그시점부터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어요. 이유가 뭔가요?”

 

유림을 만나서 들은 미래의 얘기는 모든 게 두려 웠다. 그리고 유독 넌 그때부터 격투기와 같은 운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가 전국체전 아마복싱과 태권도, 검도 대회에서 출중한 실력으로 우승을 했을 때 그날 밤 난 꿈에서 너의 검에 목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기까지 했었다. 아마도 널 처음 천재 수술이란 제단에 올려놓은 나의 잘못에 대한 이드의 보상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그 일이 있고부터 난 점점 네가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아들을 피하고 싶어 하는 세상의 아버지들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난 그때 알게 되었다.”

 

제가 두려웠다고 얘길 하시고 싶으신가요? 물론 처음에는 저도 마음이 그랬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어쨌든 그런 이유로 집으로 들어오시는 게 뜸해지셨단 말이군요. 근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실 때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신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생각해본 적 없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러면에서 생각해볼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혜정은 천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천사였다면 아버지와 같이 살기나 했을까요? 어머니는 착하디착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지금 전 화가 몹시도 나요. 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교회의 담임목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신의 말을 전하는 자가 낯선 여자와 외도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으로까지 찾아와서 칼을 휘둘렀다는 건 그 목사란 자의 자질이 어떤지 충분히 납득가고도 남아요. 지금 제 심정으로는 그 목사를 제 손으로 깨끗이 처리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을 색깔로 표현하면 무채색이에요. 그중에서도 진한 검정계열이에요. 그에 비하면 어머니는 흰색이었죠. 완전히 하얀 흰색 말에요. 그래서 아버지가 진한 회색이었다면 두 분은 경계선은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의 색깔 속에 어머니가 포용 될 수 있는 그런 조합 말이죠.”

 

지성은 말이 없었다. 지성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혜성은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러실까 생각을 하면서 거실의 불을 소등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전전반측하던 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그때 혜성 앞으로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쪽지가 한 통이 들어와 있었다. 쪽지의 내용을 읽던 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쪽지에 나온 단어를 찾고 있었다. 잠시 후 혜성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면 될 것 같아. ’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침대로 가서 잠이 들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래의 어느 날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클라인 병을 준비해줘. 유림>